몇 해 전 한 공중파 방송에서는 하루아침에 빈털털이가 되버린 골동품 상의 사연이 소개됐다. 
사연의 주인공은 여든살의 남기석씨 였다. 남씨는 1960년대 파독광부로 서독에 자리 잡은 뒤 한 나치 고위간부의 자택과 유품 전부를 경매로 낙찰받았다. 그런데 그 관리의 집에서는 엄청난 양의 금괴와 유물이 숨겨져 있었고, 그는 순식간에 골동품 업계의 큰 손이 된다. 

행운이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남씨의 삶에 먹구름이 낀 것은 귀국 하고 나서다. 그는 히틀러의 육성이 담긴 녹음기, 나폴레옹 시대의 총기류, 진귀한 우표 등 유물 4400점을 청주시 어린이 박물관에 기증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서구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철저하게 어긋넜다. 골동품 가치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관리를 할 턱이 없었다. 결국 유물중 36점이 도난 맞았고, 귀한 유물들은 축축한 창고 속에서 썩어가고 있다. 자식같은 골동품을 어떻게 이렇게 취급하냐며 항의하는 남씨에게 공무원들은 "한 번 줬으면 그만이지 왜 자꾸만 치근덕 대느냐"며 되려 큰소리였다. 

나는 남씨의 사연을 보며 '송양지인(宋襄之仁)'을 떠올렸다. 
전국시대, 송나라 양공은 초(楚)나라와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초나라 대군이 강을 건너 진격하자 양공의 휘하 장수였던 목이(目耳)가 이 때를 놓치지 말고 공격하자고 한다. 하지만 양공은 "이는 정정당당한 일이 아니다"며 거절한다. 
초나라 군대가 막 강을 건너자 목이 장군은 지금이 적기라며 재차 공격을 건의한다. 그러나 양공은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라며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양공은 초나라가 진용을 다 갖춘 뒤 공격을 개시했고 전면전을 벌인 결과 참패를 거두었다.  이후 '송나라 양공의 어짊'을 뜻하는 송양지인은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다 도리어 망하는 경우를 뜻하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한다. 교조화된 유교의 영향 때문인지 실리적 판단 하는 사람은  왠지 '간사한 사람'으로, 고루한 명분만 내세우는 사람은 '의리있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니 정치 수준이나 개인들의 사고방식이 저열할 수밖에 없다. 하등 도움 안되는 명분만 가지고 '누구 혓바닥이 더 긴지' 싸운다. 여기에서 쥐어터지는 사람은 이러한 명분이 진짜인 줄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남씨는 정말로 저런 값진 보화가 수준 낮은 시(市) 공무원들 손에서 잘 관리 될 줄 믿었던 걸까? 
만일 남씨가 저 4400점의 유물을 기증하지 않고 소더비(Sotherby's) 경매에 내놨다면 어떻게 됐을까? 남씨는 지금 정부 보조금 20만원으로 연명하는 독거노인 신세다. 하지만 경매를 통해 제값을 받았다면 지금 전국에서 손꼽히는 갑부 반열에 올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가진 보물을 쓰레기들에게 나눠주었고, 자신의 신세 뿐 아니라 유물들의 신세도 망치고 말았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치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인정(人情)을 베풀지 말라.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이 멍청하면 본인도 망하고, 상대도 망친다. 정말 상대를 위한다면 '딱 필요한 만큼만' 조건을 붙여서 도와줘라. 그래야 자립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악한 존재다. 인류 역사 5000년과 성경이 그 사실을 방증한다. 절대로 순진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독사를 키우듯 사람을 대해야 한다.  먹이를 줄때는 모르지만 언제 독침을 날리며 손을 꽉 물지 모른다. 순진하게 행동하다간 절대로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WRITTEN BY
ke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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