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is free in your life.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무언가 얻는 순간과 값이 치뤄지는 시기의 간극이 크면 더욱 그렇다. 카드회사의 마법이 바로 이런 심리를 이용한 '할부의 유혹'이 아니던가?
당장 주머니에서 현금이 빠져나가면 그 '손실감'이 온전하게 내게 느껴지지만 5개월 뒤, 1년 뒤에 지불해도 좋다면(약간의 이자와 함께) 상실감이 꽤나 줄어든다. 더군다나 나눠서 낸다면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얻었다면, 반드시 합당한 값을 치뤄진다. 비록 그 값을 치루는 순간이 머나먼 미래가 될지라도 빚은 용납되지 않는다.
오히려 값이 뒤로 미뤄지면 질수록 좋지않다. 삶에도 '이자'가 있는 법이다. 뒤로 갈수록 부담이 커진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끝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생각지도 않은 횡재가 굴러들어왔다면 다른 것으로 갚아야 한다. 건강이 좋아지지 않는다던지, 가족을 잃는다던지. 예로부터 횡재수는 좋은 것으로 치지 않았다. 정직하게 땀흘려 번 노동의 댓가만 이미 충분한 값이 치뤄진 깨끗한 재물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사회 속 병폐 중 하나가 '공짜 문화'다.
하지만 공짜가 넘쳐날수록 사회의 질(質)은 낙후된다. 공짜는 애초에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아주 고귀한 물건 조차 공짜가 되면 그 빛을 잃는다. 무료 화(化)는 사회의 모든 것을 싸구려로 만든다.
무상복지와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교육의 수혜를 받은 사람이 나중에 세금을 내서 그 값을 치루면 이건 엄밀한 의미에서 '무상'이 아니다. 일종의 유예였을 뿐이다. 따라서 공짜로 처먹고, 공짜로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이러한 부채의식을 안겨줄 필요가 있다. 혜택의 단물만 쫙쫙 빨아먹고 자신은 공동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기주의자들은 사회적 암이다.
무상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의 노동력을 국가나 기업이 '공짜'로 부려먹겠다고 하면 경악할 것이다.
그들은 "합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나를 고용하라!" 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마찬가지다. 당신은 교육을 받거나 진료를 받을 때 '합당한 값'을 교사와 의사에게 지불해야 한다.
마트에서 다른 상품에 부착돼있는 증정품을 떼어다 자기 상품에 열심히 붙이는 종자가 있다. 또, 은행이나 호텔에 비치된 커피, 녹차를 열심히 주머니에 쑤셔넣는 부류도 있다.
이들은 '찌질한' 삶을 통해 그 빚을 갚게 된다. 이런 짓을 반복하면서 수준 낮은 삶의 굴레에서 못 벗어난다. 그리고는 한탄한다. "왜 내 삶은 이렇게 안풀리지?"
자신이 하는짓을 봐라. 풀리게 생겼나.
공짜는 없다.
모든것에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라.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자신이 받은것보다 좀 더 후하게 쳐줘라.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 상대로 한 거래라면 '개평'을 좀 쥐어주는게 복이 된다.
그러면 선행의 이자가 붙어 나중에 복으로 돌아온다.